설교학 강의

설교를 위한 빌립보서 본문탐구와 설교실제

 설교자하우스 2018 여름 캠프

강의안 머리말 – 주제해설

정창균

기쁨이라는 고정관념

이번 여름 캠프의 본문은 빌립보서이다. 빌립보서 하면 흔히 “기쁨”을 떠올린다. 빌립보서의 주제는 “기쁨”이요, 빌립보서는 “기쁨의 책”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온 탓이다. 빌립보서는 기쁨을 가장 중요한 핵심 주제로 다루고 있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어떤 이들은 아예 빌립보서를 가리켜 기쁨의 책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오래 된 보편적인 고정관념은 사실이 아니다. 빌립보서는 어느 곳에서도 “기쁨”을 빌립보서의 주제로 말하지 않는다. 빌립보서에서 기쁨은 목적이 아니라, 수반되는 부수물이다. 물론 사도는 1장 초반 부터 기뻐한다고 선언하고. 책의 끝부분에 가서는 항상 기뻐하라고 반복적으로 기쁨을 강조한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것을 자기가 보내는 빌립보서의 주제로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편지를 받는 빌립보교회 교인들이 살아야 할 신앙의 목적으로 말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이 기뻐하며 살게 하려고 빌립보서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에게 기쁨은 수반되는 것이지, 의지적으로 창조해내는 것이 아니다. 기쁨은 누려야 되는 것이지 그것을 목적삼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기뻐하라!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은 기쁨을 창조해내라거나, 기뻐하는 동작을 만들라거나, 기뻐하기로 결심을 하라거나, 기뻐하겠다고 되뇌라는 말이 아니다. 기쁨을 누리라는 말이다. 사도 바울은 자기는 어느 때 기뻤는지, 우리는 왜 기뻐할 수 있는지, 혹은 어느 때 기뻐할 수 있는지를 가르친다. 그것은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리스도를 최우선으로 삼고 살아가는 신자에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현상이다.

설교자가 빌립보서의 주제는 “기쁨”이라는 고정관념과 선입견을 갖고 이 책을 대할 때 따라오는 후유증이 있다. 어디에선가 기쁨을 말해야 하고, 어떻게든 기쁨이라는 주제와 연결시켜서 본문을 말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빌립보서를 설교할 때는 언제나 어디선가 기쁨을 들먹거리고 또 기뻐하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주장하는 경향을 보인다. 본문을 기쁨이라는 주제로 덧칠을 하는 잘못을 범하게 된다. 사실 성경의 특정한 책을 특정의 주제로 요약하여 목록으로 작성하여 기억하려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심지어 성경의 각 장들을 한 마디 주제로 요약하여 성경전체를 장별 주제로 목록을 만들어서 제시하는 이도 있다. 고마운 시도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위험도 함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 예수가 최우선이다

빌립보서에서 사도 바울의 최고의 관심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에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어떻게 되는가? 그의 복음이 어떻게 되는가? 그것이 현실에서 최고의 관심이다. 모든 불가능한 현실의 문제들도 그리스도와 연결 지어 이해하고 해결책을 찾으려 한다. 그러므로 그에게 “주 안에서”는 거의 입버릇처럼 나오는 말들이다. 그는 그리스도 예수를 더 높일 수만 있다면,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이 더 널리 퍼지고만 있다면 감옥에 있어도 괜찮다. 그의 몸에서 그리스도가 더 존귀하게 될 수만 있다면 그는 사나 죽으나 상관없다. 감옥에 있어도 그는 기뻐할 수 있다. 감옥에 갇혀있는 그 사실을 기뻐하는 것이 아니다. 감옥에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더 널리 전파될 수만 있다면 감옥에 갇혀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뻐할 수 있다. 죽음이 그리스도와 더 가까이 더 많이 함께 있을 수 있게 한다면 그는 죽는 것이 더 좋은 사람이다. 그리스도 예수가 최고의 가치이다. 그리스도의 존귀함에 비하면 그의 출생 신분의 고귀함 그의 열심에 찬 헌신과 업적 등은 차라리 배설물과 같다. 그것들을 배설물로 여기기로 작정을 해서가 아니다. 그런 것들보다 비교할 수 없는 더 귀한 것을 발견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얼마나 존귀한가를 알고 나니 그 귀하게 여겼던 것, 그렇게 자랑스럽게 여겼던 다른 것들은 차라리 배설물처럼 아무것도 아닐 뿐 아니라,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전에 육체의 자랑으로 여겼던 것들을 오히려 해로 여기며 당당하게 산다. 그리스도가 최우선이고 최고 가치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가 아직 붙잡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푯대삼아 줄기차게 달려가는 목표가 있다. 그리스도 예수이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더 완전하게 아는 것이 최고의 목표이다. 그는 달려갈 길을 다 간 후에 상급을 받을 것을 확신한다. 그가 고대하는 상급은 다른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완전하게 아는 것이다. 사도는 그리스도를 최우선으로 알고 사는 자기를 본받아서 빌립보교인들도 그렇게 살기를 자신 있게 권면한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를 통하여 하고자 하는 말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이것이다. “그리스도 예수가 최우선이다!”

이 원리와 태도로 하루하루를 산다면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평강이 임할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은 기쁨이 넘칠 것이다.

정창균

정창균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 / 설교자하우스 대표
정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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