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학 강의

기도 본문의 해석과 설교실제

설교자하우스 2018 겨울 캠프

강의안 머리말 – 주제해설

정창균

기도지식과 기도실천
중국 변방 어느 집 방에서 한 달을 보내는 동안, 기도가 살 길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기도 하려고 애써보았습니다. 기도의 사람으로 정평이 났던 박윤선 목사님의 기도에 대한 가르침을 파고 들어가 보았습니다. 남는 결론은 하나였습니다.

“기도는 논하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다.”

기도에 대하여 말하기 전에 누구나 분명히 해야 할 전제가 있습니다. 기도는 논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기도에 대한 논의나 학습으로 기도에 대한 신학적 지식을 습득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지식이 기도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 지식은 헛것입니다. 기도지식은 기도생활로 이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공부하는 학도가 아니라, 기도로 하루를 사는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를 공부하는 것은 기도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루터나 칼빈이 실천하고 강조한 것도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기도를 가르친 사람이 아니라, 기도를 행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모든 신실한 하나님의 종들은 무엇보다도 기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도 늘 기도할 뿐 아니라, 늘 기도를 부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기도하는 분으로 지상 생활을 하셨습니다.

기도를 설교해야 할 이유
기도를 가르쳐주지 않고, 기도를 하라고 이끌어주지 않는데 교인들이 어떻게 기도할 수 있을까? 기도를 성경이 말씀하는 대로 말하지 않는 설교를 들으며 어떻게 하나님께 드리는 제대로 된 기도를 할 수 있을까? 기도를 설교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도 설교를 본문이 말씀하는 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설교자가 알고 있는 상식대로가 아니라, 각각의 본문이 말하는 대로 기도를 설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도에 대하여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기도를 몰라서 안하는가, 다 알면서도 하지 않아서 문제가 아닌가! 그러나 그것이 아닌 것을 알았습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대로 기도를 가르쳐주지 않으니 신자들은 기도를 염불처럼 합니다. 때로는 마법을 일으키는 주술처럼 합니다. 때로는 지성이면 감천이란 신념으로 자신의 공력을 쌓기 위해 기도합니다. 심지어 신을 달래거나, 신과 거래를 하거나, 나아가서 신을 협박하는 이방종교의 기도를 교회 안에서 신자들도 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지요. 때로 우리의 기도에서 하나님은 기도를 받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기도를 수행하는 심부름꾼이 되어버리곤 합니다. 그러므로 각각의 성경 본문이 말씀하는 기도를 제대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설교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앉혀놓고 기도를 가르치셨습니다. 하루 세 번 씩 기도하는 제자들에게, 기도의 기라성 같은 선조들을 갖고 있는 그들에게 기도란 이렇게 하는 것이란다 하고 가르치셨습니다. 그 시대의 기도라 불리는 것들이 사실은 기도가 아닌 것들이어서 예수님은 기도를 가르쳐야만 했습니다.

지식에 머무는 기도신학의 위험성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기도에 대한 신학적인 지식에만 머무는 것은 헛것일 뿐 아니라 위험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며 어디에서도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사상은 매우 고상한 기도신학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그러니까 꼭 새벽에 반드시 교회에 나아가서 기도해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논리를 이끌어내고, 그리하여 새벽기도를 하지 않는 자신을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사용하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고 어디서나 들으신다는 신학은, “그러니까 여기서 지금 기도해야 한다”는 실천으로 작동해야 합니다. 우리는 죄 된 본성과 게으른 성품을 가진 연약한 자들이어서 특정한 시간과 장소를 정하여 억지로라도 그 시간에 그곳에 가서라도 기도하도록 나를 다스려야 최소한의 기도라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구하기 전에 미리 다 아신다는 지식은 매우 정당하고 차원 높은 기도신학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그러니까 굳이 기도하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를 이끌어내고, 그리하여 기도하지 않는 자신을 정당화 하는 근거로 사용하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그것은 자신을 속이고 하나님을 시험하는 범죄 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구하기 전에 이미 다 아신다는 지식은, “우리에게 그렇게 큰 관심을 가지고 계시니 더 열심히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는 데로 나아가서 더 기도하게 하는 원동력으로 작동해야 합니다.

기도 없이 하는 모든 신학활동이나 신앙활동은 결국 헛것입니다. 담임목회를 하면서 부교역자들에게 늘 느끼는 안타까움과 답답함은 젊은 사역자들이 기도에 열심을 내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하늘에서 별을 따오는 재주를 가졌어도 기도하지 않는 사람과는 함께 일하지 않는다. 기도 없이 따온 하늘의 별은 결국 헛것이 되기 때문이다.” 담임목회를 하는 동안 함께 사역하는 부교역자들에게 자주 했던 말입니다.

예수님의 기도생활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공적으로 모든 것을 걸고 가장 힘써서 하신 일들이 있습니다. 세 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과, 사람들을 치유하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시는 동안 모든 것을 바쳐서 하신 공적 사역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사적인 차원에서 전력을 기울여 하신 일이 있습니다. 기도였습니다. 예수님은 무엇보다도 기도생활에 힘썼습니다. 때로는 기도를 위하여 공적인 일을 뒤로 미루기도 하였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기도하실 뿐 아니라, 제자들에게도 기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마지막 날 밤에 제자들을 모아놓고 하신 고별설교에서 예수님이 거듭해서 하신 말씀은 기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는 기도하지 않았어도 이제는 기도하라는 말씀을 반복적으로 하셨습니다. 환난이 닥칠 때에 기도가 살길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가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도 마지막으로 한 것은 기도였습니다.

기도에 살길이 있다.
개인이든지, 교회든지 살 길은 기도로부터 열립니다. 제대로 된 기도를 회복하는 데로부터 우리 자신과 한국교회의 살 길이 열립니다. 기도를 강조만 하지 말고 목회자 자신부터 힘쓰고 애써 기도해야 합니다. 사실 한국교회는 말씀과 함께 기도로 세워진 교회였습니다. 이번 캠프의 분명한 목적은 2 가지입니다. 첫째, 우리 자신이 기도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 설교자로서 연속성 있고 통합적인 기도 설교를 행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기도를 앞세우는 목회를 하고, 성도들로 하여금 기도하는 신자로 살게 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설교하는 목적은 기도에 대한 이해에 있지 않고 기도를 하게 하려는데 있어야 합니다. 익숙한 기도 본문들을 선정하여 어떻게 기도를 설교할 것인가를 재점검할 것입니다. 그간 해온 단편적이고 획일적인 본문해석과 기도 설교를 벗어나서 본문이 말하는 기도에 대한 가르침을 다시 확인하고 성도들에게 설교할 자료를 준비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구약이 말하는 기도, 신약이 말하는 기도, 그리고 교회사에서 일어난 기도 운동에 대한 특강을 통하여 기도에 대한 종합적이고 통합적인 안목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번 캠프가 우리의 기도 생활과 기도 설교에 큰 변화를 가져오고, 그리하여 우리 자신과 교회의 성도들이 제대로 된 기도를 회복하여 다시 살아나는 기회가 되기를 빕니다.

정창균

정창균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 / 설교자하우스 대표
정창균

Latest posts by 정창균 (see 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