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학 강의

언약관계에 근거한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으로서 설교

                                                                                                                                                                     정창균

들어가는 말

 가장 본질적인 의미에서 볼 때, 설교란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다. 그의 백성에게 임하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을 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백성의 반응을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기독교 설교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설교의 원형은 어디로부터 찾을 수 있는가? 기독교 설교의 원형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논자에 따라 견해를 달리한다. 예를 들어 피터즈(HJC Pieterse)는 신약에 나타나는 용어들, 즉 설교의 성격을 함축하고 있거나 말씀의 선포와 관련하여 사용된 단어나 용어들의 분석으로부터 설교의 원형을 구축하고 있다(Pieterse: 1987). 그런가하면 예수님의 말씀사역으로부터 우리 설교의 원형을 찾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사도행전에 나타난 사도들의 복음 선포 사역을 기독교 설교의 실질적 원형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또 어떤 이들은 오늘 날의 설교자들의 설교사역과의 말씀을 선포한다는 외적 유사점에 착안하여 구약의 선지자들의 말씀 선포에서 기독교 설교의 원형을 찾기도 한다. 그러나 몇 가지 단어의 의미 분석이나 사역의 외적 유사성으로 부터가 아니라, 설교의 본질에 대한 이해로부터 기독교 설교의 원형과 그의 함축적 의미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본 논문의 의도는 설교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언약관계를 근거로 한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설교의 본질에 대한 이해를 근거로 하여 구약에 나타나는 언약관계를 근거로 한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살펴보면서 그것들이 함축하고 있는 기독교 설교의 본질에 대한 발견과 구약에 나타난 설교의 원형으로서의 설교양식들을 찾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구약에 기독교 설교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설교 양식이 있는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설교의 본질을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이해한다면, 이러한 의미에서의 설교 양식이 구약 안에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인간의 창조가 이루어진 그 순간부터 이미 하나님과 그가 지으신 인간 사이에 커뮤티케이션이 일어나고 있음을 우리는 볼 수 있는 것이다. 설교를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으로 이해하고, 그것이 구체적으로 실현되고 있는 양식을 찾으려 할 때, 특히 구약에서는 자기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근저에는 언제나 언약관계가 그 핵심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언약관계를 근거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언약관계를 근거로 하나님의 자기 계시와 뜻과 계획이 그의 언약백성에게 다양한 양상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전달로서의 설교의 다양한 양식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언약관계를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preachers_spacer]

1. 구약의 중심 주제로서 언약 관계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언약관계는 구약을 관통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 가운데 하나이다. 성경이 진술하고 있는 역사의 본질이 구속의 역사라면, 구약에 나타난 구속의 역사는 사실상 언약(berith)의 성립과 진행 그리고 성취의 역사라고 할 수 있으며, 이 언약 안에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향한 자신의 뜻을 확증하시는 것이다(cf. McComiskey 1985:10). 송재근은 한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의 나라가 역사 속에서 형성되는 구체적인 제도 혹은 수단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맺어진 ‘언약’이다”라고 말한다(송재근 2003:16). 그런 점에서 오덴달(D. H. Odendaal)의 “구약의 역사는 언약의 역사로서 평가될 때에 비로소 올바르게 인식된다” 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고 할 수 있다(1989.149). 아이히크로트(Walther Eichrodt)는 언약을 신학적 의미 안에서 정의하고 이 개념을 구약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로 이해한 대표적인 학자들 중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언약이야말로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이 하나님과 결속되어 있다는 사상을 결정적으로 표현하는 개념이며, 처음부터 하나님에 대한 자신들의 지식의 독특성을 견고하게 구축할 수 있는 방편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의 언약적 결속이야 말로 다른 모든 요소들 가운데서도 독창적인 요소라고 보는 것이다(1961 vol. 1:36).

이러한 언약관계는 언제부터 이루어진 것인가? 로버트슨(O. Palmer Robertson)은 구약에서 언약의 근간을 이루는 언약은 노아, 아브라함, 모세, 다윗과의 언약, 그리고 새로운 언약이라고 이해하였다(1980:17). 실제로, 언약이라는 용어는 하나님께서 노아와의 언약을 성립시키는 장면과 관련하여 처음 성경에 쓰여 지고 있다 (창 6:18; 9:9, 11, 12, 13, 15, 16, 17). 다이네스도(William Dyrness, 1979:116) “노아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언약 이전에는 언약의 개념은 정식으로 등장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는 언약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했을 때 비로소 형성 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노아 시대 이전에도 창조주로서의 하나님과 피조물 인간 사이의 특정한 관계가 존재했다는 것은 자명하다. 다만 그것을 언약관계라고 할 수 있는가하는 것이 문제이다. 이 관계에 대하여 로버트슨(Robertson)도 노아와의 언약 이전에 존재한 하나님과 피조물로서의 인간의 관계를 언약관계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1980:18). 그러나 그는 이 문제와 관련한 여러 논쟁들과 또한 관련 구절에 대한 세밀한 연구를 근거로, 비록 창세기의 첫 장들에 “언약”이라는 용어가 직접 등장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노아 이전의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도 역시 언약적 관계였다는 결론를 내리고 있다. 그는 언약적 결속(covenantal bond)이 창조에서 종말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과 그의 백성사이의 관계를 결정해오고 있으며, 신성한 언약의 범위는 세상의 창조 때부터 세대의 말까지 이어지는 것이라고 단정을 짓는다(1980:25). 오덴달(Odendaal)은 구약의 창조를 언약관계로 향해 가는 과정의 역사적 프롤로그로 이해한다(1989:150). 즉, 언약이라는 단어의 출현이 비로소 언약관계에 대한 개념을 형성해내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은 언약관계 자체가 어떻게 다양한 방식으로 그것을 표현 혹은 설명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preachers_spacer]

2. 언약 관계의 신학적 함축

언약관계를 형성하는 핵심적인 요인은 하나님의 그의 백성 가운데로의 오심과 그들 가운데 임재하심이다. 그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오심과 그들 가운데 거하심이야말로 언약관계의 핵심 이미지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이미지이거나 추상적 개념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당신의 백성들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구체적인 개입인 것이다(Eichrodt 1961:37). 이러한 점에 있어서 언약관계의 본질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을 언약당사자로 하고, 양자가 언약 책임을 갖는 쌍방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이 관계가 성립된 연원을 놓고 볼 때는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주도권(initiative)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관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기 백성에게로 오심과 그들 가운데 거하심은 적어도 두 가지 사실을 초래하는 근거가 된다. 첫째는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에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에게 오셔서 거하시는 것은 단순히 그들을 둘러보시거나 한쪽에 비켜서서 지켜보시기 위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에게 자기 자신을 드러내어 알리시고(자기계시), 자기의 계획과 의도를 밝히시기 위하여 오시고, 머무시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자기 계시가 이루어지고, 그 백성은 비로소 하나님 지식과 그 지식에 대한 반응을 보일 것을 요구받는 위치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즉 하나님과 그의 인간 백성 사이에 실질적인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언약관계로 말미암아 비로소 말씀하시는 하나님(dei loquentis personae), 그리고 듣고 반응하는 그의 백성으로서의 양자 사이의 의미 있는 커뮤니케이션의 가능성과 실재성이 그 근거를 확보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 설교의 근원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의 백성에게로 오셔서 말씀하시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만남의 사건을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를 통하여 실현하는 것을 그 본질로 하는 기독교 설교야말로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언약관계를 근거로 한 커뮤니케이션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오심과 임재하심을 핵심으로 하는 언약관계의 성립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두 번째 중대한 사실은 그의 백성의 정체성에 대한 확립이다. 언약관계의 실체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는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다. 오셔서 그들 가운데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통하여 그의 백성은 그들이 반응을 나타내야 할 하나님에 대한 거룩한 지식을 접하게 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지식을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 이리하여 그들은 자기들이 누구였는지 자기들의 과거를 설명할 뿐 만 아니라, 또한 미래를 바라보며 직면할 능력을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Odendaal 1989:150). 다른 말로하면, 언약관계의 성립은 그의 백성의 정체성 확립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구약의 저자들 특히 선지자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의 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심판의 저주와 회복의 소망을 선포하면서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근거로 이스라엘 백성을 도전하거나 호소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로버트슨의 지적과 같이(Robertson 1980:45-52)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는 선언이야말로 언약에 대한 기록문서들에서 언약의 핵심적 실체에 대한 요약으로 일관되게 확인되는 것이며, 이러한 점에서 여러 언약들은 주제에 있어서 하나의 통일성을 갖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언약의 핵심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선포이며, 이것은 당신의 백성 가운데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실재를 일컬음이다. 로버트슨(:46)의 지적과 같이 구약에서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는 어구 혹은 이를 함축하는 어구들이 반복적으로 선언되고 있는 것은 언약이 함축하고 있는 “임재의 원리(Immanuel Principle)”를 표방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preachers_spacer]

3. 언약적 책임(Covenant Responsibility)

언약관계는 언약적 책임을 수반하는데, 이것은 언약관계의 유지와 언약관계의 확장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파악되며, 이러한 요소는 기독교 설교의 본질과 관련하여 중요한 원리들을 함축하고 있다.

1) 언약관계를 유지할 책임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언약관계는 추상적인 개념이나 혹은 단순한 언어적 현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Odendaal:149). 언약관계는 그들의 삶의 현실이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의 일상의 삶과 결부된 실체적인 것이었다. 그것은 그들의 매일 매일의 삶의 현장에서의 모든 삶의 근거요, 기준이요, 또한 원리인 것이었다. 그들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서의 구체적인 삶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이 도덕적인 문제와 결부된 일이든지, 제사 문제이든지, 가정 문제이든지, 사회문제이든지 언제나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서의 순종의 반영이어야 하는 것이었다. 클라인(M.G. Kine)은 “그들의 모든 삶의 정황(the Sitz im Leben)이 철저하게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서의 언약적 삶(throughly covenantalized life)”이었음을 강조하면서, 정경으로서의 구약 성경의 기원과 구조에 대하여도 이러한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정경은 한 마디로, “언약의 유산”이다(Kline 1970a:270, cf. 1970b:61-62, 67, 179-200).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서의 언약관계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곧바로 하나님의 언약적 다스림이라는 문제로 나아가게 한다. 언약이 성립된 연원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일방적 언약이었다.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주도권에 의하여 성립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성립된 언약의 본질을 놓고 보면 그것은 쌍방적 관계이다. 니콜슨(E.W. Nicholson 1986:212)이 강조하는 대로, 이 쌍방적 관계라는 본질은 이스라엘백성의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순종을 수반한다. 언약관계를 근거로 이스라엘의 모든 삶, 그것이 사적인 것이든 공적인 것이든, 종교적 의식의 영역에 관한 것이든 일상 생활의 영역에 관한 것이든지를 불문하고 여호와의 언약적 통치 아래 서게 되는 것이다. 다이네스(Dyrness)가 정확히 지적한 바와 같이, “언약의 배후에 놓여있는 것은 은혜로우신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인 것이다(1979:124). 하나님은 그의 백성과의 언약 관계에 있어서 언제나 주권적인 권위를 행사하신다. 그리고 그의 언약백성은 언제나 순종의 참된 신앙의 반응으로 언약의 하나님을 대면하여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하나님과의 언약은 다른 인간 사이의 계약과 다른 것이다. 아이히크로트(Eichrodt)는 이 점을, 은혜로우신 하나님의 자발적인 수행으로서 수립된 하나님과의 언약이 다른 인간 사이의 언약과 철저하게 다른 점으로 강조하고 있다(1961, vol.1:44, 45).

그러므로 구약에서 언약 관계를 지칭하거나 혹은 언약관계를 배경으로 말씀이 선포될 때는 거의 언제나 “순종”이 관건으로 거론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불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최후적 경고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는” 관계가 끊어진다는 것이고, 이 관계의 회복을 선언하는 소망의 메시지를 선포하실 때에도 언제나 “순종”이 조건으로 제시 되는 것이다. 즉, 순종이야말로 언약관계를 유지하는 관건인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순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언약 백성의 언약적 책임인 것이다. 언약적 책임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아래에서 보는대로 오늘 날 우리의 설교에도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신앙적 순종의 반응을 유발하려는 것이 언약관계를 근거로 한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으로서의 설교가 갖는 궁극적 목적이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어서 순종의 문제는 오늘 날 많은 설교자들이 가르치는 것처럼 단순히 순종하면 복을 받고, 순종하지 않으면 복을 받지 못하고 손해보는 정도의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근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관건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어서 순종은 단순히 축복의 문제와 관련된 것이기 이전에, 그들의 신분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는 것이다.

언약 관계의 유지를 위한 언약적 책임으로서의 순종의 문제는 “들음(shema)” 이라는 또 다른 중요한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순종(obedience)은 들음(hearing)과 직결되어 있다. 사실 히브리어의 순종이라는 단어는 듣는다는 동사(shema)로부터 유래한 것이기도 하다. 부르그만(W. Brueggemann)의 “성경에서 순종은 듣는 모습을 취하며, 순종하는 삶이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listen), 그 음성에 참여하며(attend to), 그리고 그 음성에 반응하는 것(respond to)”이라는 주장은 일리가 있는 것이다(1989:81). 그러므로 구약에서는 듣기를 망각하였거나 듣기를 거부한 이스라엘을 향하여 나아와 귀를 기울여서 들으라는 급한 부르심이 주어진다.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거부하고 순종을 거부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다급한 마음과 준엄한 경고를 갖고 보냄을 받은 선지자들의 사역의 본질은 이스라엘 백성의 들음의 문제와 관련을 맺고 이루어지는 것이다. 물론 이 들음은 단순한 청취가 아니라, 순종의 반응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들음은 단순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사실 인식이 아니라, 순종으로 나아가는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들음의 이러한 성격은 신약에서도 여전히 나타나고 있는데, 특히 사도행전에서 행해지고 있는 말씀선포로서의 설교들의 주요 특성은 듣고, 회개할 것에 대한 부르심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들어야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는 그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알려주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록 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어야 한다(cf. Tannehill 1990:26, 1991:406).

결국 언약의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순종하기 위하여 언약백성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그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듣고 싶은 말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들어야 하고 또 들을 필요가 있는 말씀을 듣기 위해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날 설교가 이러한 점을 간과하고, 청중의 필요로부터 설교를 시작하라는 운동에 휩싸이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청중에 대한 충분한 이해는 설교자에게 필수적인 것이지만, 그러나 청중 자신이 표현하는 필요(expressed need)와 청중에게 실제로 있어야 하는 필요(actual need)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무시하고 언제나 청중이 요구하는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메시지에 얽매이는 설교는 위험한 것이다(cf. 정창균 2002:16). 사도 바울의 “가려운 귀를 긁어주는” 설교에 대한 경고는 이러한 맥락에서 적절히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2) 언약관계를 확장할 책임
언약관계의 수립은 이미 그 안에 언약관계의 확장에 대한 책임을 전제하고 있다.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에 있는 그들은 개인 또는 민족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언약관계를 유지할 책임은 물론, 하나님에 대한 증언을 통하여 언약관계를 확장할 책임을 또한 갖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당신이 수립하시는 언약관계가 단순히 아담이나 노아, 아브라함, 모세, 그리고 다윗 등 언약당사자에게서 그치는 것을 의도하지 않으셨다. 예를 들어, 아담과의 언약적 관계를 수립하실 때 하나님은 이미 아담으로 말미암을 땅에 충만할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계셨으며, 아브라함과의 언약에서는 이미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다의 모래 같을 그의 후손들을 염두에 두고 계셨던 것이다.

언약관계의 확장은 여러 세대를 향한 통시적인 확장과, 여러 민족을 향한 공시적인 확장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오고 오는 세대에게(generation to the generation)”은 통시적인 확장에 대한 전형적인 구약적 표현이었고, 그의 신약적 표현이 “세상 끝 날까지” 이었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모든 열방에게”는 언약관계의 공시적 확장에 대한 구약적 표현인가 하면, “땅 끝까지”는 그의 신약적 표현이기도 했다. 다시 말하여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는 통시적으로는 이 세상 끝날 까지 오고 오는 세대에게, 그리고 공시적으로는 땅 끝에 있는 민족에게 이르기까지 모든 민족을 향하여 확장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아래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구약에서 각 세대의 아버지들은 특별히 이러한 언약 관계의 통시적인 전달에 대한 책임을 갖고 있다(cf. 신 6:4ff). 언약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아버지들은 단순한 혈통의 계승자가 아니라, 언약의 전승자(Carriers of the covenant)이었다. 그와 반면에, 언약 민족으로써 이스라엘은 다른 민족들에게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확장할 책임을 갖고 있었다. 언약백성으로써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이 되기 위해 선택된 것이었다. 그들은 다른 민족에게 빛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의 언약적 관계, 즉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구원 역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하여 땅 끝까지 확장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cf. 사 42:6; 49:6).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선교는 예수님의 대사명을 수행하는 신약 교회에서 비로소 시작된 것이 아니고, 언약적 관계가 수립된 창조 사건 때부터 이미 전제되어 있는 것이었다. 드 푸리(J. du Preez)의 “언약의 개념 자체가 선교라는 것을 가능케 한다”(1987:14)는 말도 언약관계가 함축하고 있는 언약적 책임, 즉 언약관계의 확장 책임에 대한 이와 같은 이해를 배경으로 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민족에게 전달하는 것은 언약백성인 이스라엘의 언약적 책임일 뿐 아니라, 그들의 특권인 것으로 이해한다(:17).[preachers_spacer]

  1. 언약적 책임을 수행하는 구체적인 방편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언약관계를 유지하는 책임과 “세상 끝 날까지 오고 오는 세대에게”, 그리고 “땅 끝까지 이르러 모든 열방에게” 언약관계를 확장하는 언약적 책임을 수행하는 구체적인 방편은 무엇인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언약관계를 유지할 책임을 감당한다면, 하나님에 대한 선포와 증언으로 언약관계를 확장할 책임을 감당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이 언약관계를 확장할 책임을 수행하는 구체적인 방편은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하나님의 이야기를 다시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반복적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명령은 “하나님의 이야기를 다시 이야기(retelling of God’s story)”하라는 말씀이었다(Jung, 1995:135-40). 그들은 자녀들에게 그리고 자녀의 자녀들에게, 그리고 민족과 민족들을 향하여 하나님은 누구이신가, 하나님은 무엇을 하셨는가를 지속적으로 이야기 해주어야 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 자체였다. 이것이 언약적 책임을 수행하기 위하여 그들이 감당해야 할 선포요, 증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언약백성이 감당해야 할 이러한 증언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세상 끝 날까지 항상” 함께 있겠다는 약속(마28:18,20)과 더불어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행1:8)는 예수님의 명령에서 그 절정을 이루는 것이다.

언약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이 수행해야 했던 선포와 증언으로서의 하나님의 이야기를 다시 말하는 그것이야 말로 다름 아닌 기독교 설교의 본질이기도 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늘 날 우리 설교의 본질과 근거를 파악할 때 우리는 여기서 설교에 대한 중대한 함축들을 포착할 수 있다. 설교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이야기를 다시 이야기(retelling) 하는 것이어야 하며, 그것은 우리 설교가 철저하게 본문에 집착하며,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증언하는 것이어야 할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의 설교사역은 언약백성의 순종과 함께 궁극적으로는 언약관계의 확장, 곧 하나님의 구속 사역의 확장을 지향해야 할 것을 의미한다. [preachers_spacer]

5.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과 그의 백성사이의 커뮤니케이션으로서 설교의 양식(Mode)

당신의 백성과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여러 방법으로 말씀을 하셔야 했다(cf. 히 1:1). 구약 성경에서는 최소한 4종류의 주체가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수행하는 기관으로서 드러난다. 그것은 1)제사장 2)선지자 3)지혜자들 4)가정의 아버지들이다. 제사장들의 토라와 그들이 수행한 제사와 다양한 의식들, 그리고 선지자들의 예언 행위와 지혜자들의 교훈(wisdom counsel), 그리고 각 가정의 아버지들의 자녀들을 향한 가르침과 지시들은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는 중요한 방식이었으며, 이들이야말로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언약관계를 근거로 한 커뮤니케이션으로서의 기독교 설교의 구약적 설교양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구약 성경에 나타나는 이스라엘의 공적인 기관으로는 제사장과 선지자, 그리고 지혜자의 세 기관이 있다는 것은 널리 인정되고 있는 사실이다. 그들은 지식과 권위를 가진 공식적인 직분이었다. 그들은 또한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관들 이었다. 예레미야는 자신의 심판에 대한 예언에서 이 3 가지 권위자들에 대한 언급을 한다(렘 18:18). 그러나 언약관계를 근거로 한 하나님과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는 위 3개의 기관 외에 각 가정에서의 아버지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위에 언급된 3개의 기관과 같이 아버지들의 교훈과 지시가 구약 성경 안에서 하나의 독립적인 장르로서 소개되고 있지는 않지만, 아버지들이 언약관계와 관련하여 여러 세대에 걸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이다. 자녀들을 가르치고, 또 자녀들의 물음에 하나님이 무엇을 하셨는지를 가지고 대답해주라는 아버지들을 향한 하나님의 명령은 이 점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cf. 창18:19, 출 10:2, 12:24-27, 13:8-10,14, 신4:9-10, 6:6-7, 20-25, 11:19, 32:46, 수4:6-7, 21, 시78:1-7, 욜11:3). 

1) 제사장과 율법 및 의식
제사장의 주된 역할은 율법(Torah)을 알리는 것과, 각종 의식에서 언약을 기념하는 것이었다(Zimmerli 1978:97). 토라는 예식이나 법적인 문제나 역사 혹은 개인적인 문제들과 관련한 율법에 대한 지침과 가르침이었다. 제사장들은 하나님으로부터 토라를 받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했다. 다른 말로하면, “토라는 제사장들의 중간 역할을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그의 백성들에게 주어진 것이었다.” (Vriezen, 1966:254).

율법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언약의 표현”(Dryness, 1979:129)이었고, 여호와에 대한 예배는 언약적 동의에 근거하여 이루어지는 것이었으므로, 그 언약에 대한 제례적, 의전적 축하와 기념인 모든 절기와 잔치들에서 율법의 낭독과 선포가 여호와 예배를 위하여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신 31:9ff, cf. Macarthy 1972:36)

특별히 제사장들에게 부여된 매개자로서의 역할을 통해,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일상적인 생활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백성이요, 그리하여 그들의 매일의 삶에서의 하나님의 뜻과 인도를 받기 위한 커뮤니케이션 통로를 받았으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주변 국가에서 숭배되던 모든 우상과 권위를 부정하도록 요구되었으며, 오로지 하나님의 뜻만 따를 것으로 요구되었다.

그러므로, 제사장들의 토라는 그의 백성과 언약관계를 설립하신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계시하시는 데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커뮤니케이션 방식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2) 선지자와 그들의 예언
선지자들의 예언 역시 언약관계에 근거한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의 한 양식(mode)이라고 볼 수 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 직접 부르셔서 당신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하도록 정해주신 사람들이었다. 거짓 선지자가 아닌 한 그들은 언제나 하나님이 그의 언약백성들에게 하시고자 하는 말씀들을 그 백성들에게 전달하고 선포하는 사람들이었다. 선지자 자신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하여 선지자가 되었다는 사실과,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여서 그들이 말하기를 시작했다는 선지서들의 직접적인 언급들은 그들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이 하나님과의 커뮤니케니션임을 명백히 증거하는 것이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확실한 메시지를 주셨다는 사실을 분명히 의식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주,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또는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임했다.” 등의 형식으로 자기들의 선포가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표현하곤 하였다.

선지자들은 항상 이미 존재한 언약 관계를 근거로 하거나 혹은 언약관계를 배경으로 그들의 메시지를 선포하였다. 선지자들의 근본적인 관심은 언제나 언약 백성들의 성실성이었다(hesed). 이러한 성실성을 근거로 그들은 심판과 축복을 선언하였다. 이러한 선언들은 이미 존재하는 언약관계의 맥락에서 이루어졌다. 팬샴(Fensham)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을 지키지 않고 그 법을 어기는 것이 선지자들의 예언의 시작이 되었다고 말한다(1971:89).

3) 지혜자들과 그들의 권고
지혜자들의 권고가 언약관계와 어떤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인가? 클라인(M.G. Kline, 1970:193)이 지적하듯이 구약의 지혜문학은 언약의 해설이다. 오덴달(Odendaal)은 언약의 삶이 매일 매일의 모든 삶속에서 어떻게 드러날 것인가 하는 것이 지혜자들이 자기의 학생들에게 가르치고자 한 것이었다고 주장한다(1989:149).

분명한 것은, 지혜자들의 잠언은 언약의 규정들을 해설하거나 혹은 언약관계 안에 내재되어 있는 사항들을 밖으로 분명히 드러나게 함으로써 삶의 여러 상황과 여건에서의 하나님의 뜻을 커뮤니케이션하는 한 양식이었다는 것이다. 이로써 하나님의 언약백성들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만이 아니라,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그들의 일상적인 삶을 하나님과의 언약관계 안에서 살도록 인도받는 통로(channel)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지혜를 언약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세상적이고 우주적 보편성의 관점에서 보는 폴 W. 뉴만(Newman, 1987:85,86)) 등의 견해는 지혜문학에 대한 지나치게 피상적인 관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구약의 지혜문학의 궁극적 관심은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어떻게 하루하루의 삶을 하나님과의 언약관계 안에서 살아갈 것인가, 즉 언약관계가 어떻게 매일의 삶속에 구체화 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며, 이런 점에서 지혜자들의 권고 또한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의 언약관계를 근거로 한 커뮤니케이션으로서의 설교의 한 양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4) 아버지들과 그들의 자녀교육
구약에서 가정은 각 세대에 걸쳐 하나님의 언약을 전달하는 매개로서의 독특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구약에서는 아버지들에게 자식들을 교육시킬 것에 대하여 엄격한 명령이 주어지고 있다. 가정 안에서 이뤄지는 이러한 교육의 핵심은 언약의 하나님의 정체성과, 이 언약의 하나님과 자기들의 조상들과의 언약관계를 분명히 가르치는 것이었다. 아버지들은 이 책임을 수행하기 위하여 이 언약의 하나님이 자기들의 조상들에게 누구였는지, 그 하나님이 그 조상들에게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 그리고 조상들은 어떻게 반응을 했는지를 이야기 해주어야 했다. 그러므로 부르그만(Breuggemann, 1982:14-27)이 지적하듯이, 이스라엘에서의 교육은 “얘기하나 해줄까?(Let me tell you the story)”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그것이 할례와 같은 시각적인 방법이 되었건, 또는 구두로 전하는 이야기 식의 방법이 되었던 간에, 아버지가 자녀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언약관계 안에서의 세대와 세대 사이의 결속(binding of generations)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었다.[preachers_spacer]

6. 하나님과의 커뮤니케이션으로서 설교의 성령론적 본질

하나님과의 커뮤니케이션으로 설교를 이해할 때 기억해야 할 중요한 또 다른 요소는 이 커뮤니케이션이 가지고 있는 성령론적 본질에 대한 이해이다. 보이지 않는 대행자로서 성령의 역사에 대한 인식인 것이다.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에서 그들로 하여금 순종할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의 반응을 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하나님에 대한 임재의 경험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언약백성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하나님의 임재는 “영적인 임재”이다. 그것은 신체적, 물질적인 존재의 임재가 아니었다. 이 커뮤니케이션에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대행자(invisible agent)인 성령님이 계시는 것이며, 그가 말하는 자로 하여금 말을 하고 행동을 하게끔 하며(Vriezen 1966:252), 듣는 자로 하여금 자신의 눈과 귀를 열게끔 하는 것이다(시 115:5,6; 135:16,17 잠 20:12; Is 43:8; 50:5; 렘 5:21). 본질적인 차원에서 볼 때 그것은 모두 성령론적인 문제였다.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성령론적 요소는 선지자들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에서 더 확실히 드러난다. 성경에서 분명히 볼 수 있듯이, 선지자들의 선언은 대체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으로 시작되거나, “하나님이 말씀 하셨다.”로 끝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확실한 메시지를 주셨다는 사실을 분명히 의식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주,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거나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임했다.”는 등의 형식으로 그 사실을 선언하였다. 하나님의 성령이 말씀을 그들의 입에 넣었다. 프리젠(Vriezen)은 이스라엘의 예언의 본질은 하나님의 행위, 즉 영적인 요소로 부터만 제대로 이해될 수 있으며, 선지자는 하나님의 영으로 이끌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직접적으로 부름을 받으며,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왔기에 바로 선지자인 것이라고 하면서(1966:261, cf. Zimmerli 1978:99-107), 선지자들의 직분과 사역의 성령론적 성격을 강조하고 있다.

지혜문학에서도 성령론적 본질은 여전히 발견된다. 잠언서에는, 지혜가 의인화 되어 지혜는 곧 길거리에서 부르짖는 설교자, 그리고 듣는 자에게 자신의 말과 영혼을 부어주겠다고 약속하는 자로 묘사 된다 (잠언 1:20-23). 특히, 선지서에서는 성령이 선지자에게 내려오는 반면에, 잠언서에서는 성령님이 듣는 자에게 내려지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새 언약의 선포에는 이러한 언약관계를 근거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커뮤니케이션에서 성령님의 역할을 더욱 직접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새 언약에서는, 성령님 자신이 직접적인 커뮤니케이터로 소개된다. (겔36:27, cf. McComiskey 1985:92). 사실, 새 언약은 성령의 언약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기독교 설교에 있어서 보이지 않는 대행자로서 성령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으로서 우리의 설교가 제대로 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성령을 철저하게 의존해야 된다는 요구이기도 하다.[preachers_spacer]

맺음말

기독교 설교를 하나님과 그의 백성사이의 언약관계를 근거로 한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위와 같은 네 가지 양식을 구약에 나타난 기독교 설교의 양식(mode)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양식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의 내용은 한 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핵심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이다. 그러므로 수많은 다양한 이야기는 결국 하나의 큰 이야기 속의 작은 이야기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로부터 우리는 기독교 설교가 필연적으로 갖추어야 할 메시지의 신학적 통일성과 일관성에 대한 요구의 근거를 확보할 수 있다.[preachers_spac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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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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