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탐구와 설교 작성

사나 죽으나 한 가지 소원(20-26절)

결국 사도 바울이 여기서 다루는 문제는 살고 죽는 문제가 아니다.

죽을 것인가, 살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 최우선의 문제이다. 죽는 것이 나에게는 가장 좋고 유익이고 바라는 것이라고 말하는 근거와, 내가 힘들고 괴로워도 살아남아야 될 것 같다고 결론짓는 근거는 실상 동일하다. 그리스도 최우선의 원리에 근거하고 있다. 내가 죽는 것이 좋은 이유는 분명하다. 나는 그리스도를 가장 좋아하고 귀하게 여기므로 그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이 나에게는 최고의 기쁨이다. 그런데 그 주님과 함께 있는 가장 확실하고 빠른 방법은 내가 죽음으로 그분에게로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죽는 것이 좋다! 삶이 고달픈 자의 자살 심리도 아니고, 세상에 지친 자의 자포자기도 아니다. 살아야 되겠다고 결론짓는 근거도 단 한 가지다. 교회 밖의 세력으로부터 신학적으로 공격당하고 현실적으로 위협당하며, 다툼으로 내부 분열의 위기에 직면해있는 빌립보 교회 교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에 굳게 서고 그리스도를 더 확실하게 알게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하여는 나의 사역이 필요하고 그것이 저들에게 유익을 가져오는 방법인데, 그렇게 하려면 내가 더 살아남아야 하는데…. 그것이 사도의 결론의 근거인 것이다. 그리스도 최우선이 나에게 적용되기 위해서는 내가 죽어야 하는데, 그리스도 최우선이 저들에게 적용되기 위해서는 내가 살아야 하고, 이 둘은 동시에 성립될 수 없는 배타적인 본질을 갖고 있는 것이고…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여기에 사도의 번민이 있고, 그는 내가 괴로울망정, 나 자신의 유익이 깨뜨려질망정 교회의 유익을 택해야된다는 데에 이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고민은 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 죽음이란 무엇이며, 생명이란 무엇인가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은 둘 사이에 끼였다고 말할 때, 죽음과 삶 사이에 끼였다는 말이라기 보다는 자기의 원하는 바와 빌립보 교인들의 유익 사이에 끼였다는 의미이다. 자기의 원하는 바는 자기가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다. 그것을 이루는 구체적인 방법은 사형선고를 받고 죽는 것이다. 그러나 빌립보교인들의 유익은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자랑이 풍성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구체적으로는 사도 바울이 살아남아서 바울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다. 그렇게 보면 양자가 동일하게 그리스도 최우선이 그 본질이다. 그리고 나의 유익인가 교회의 유익인가가 그 실상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자기의 원하는 바를 포기하고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살아남기로 결심하고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어떻게 죽을 것과 살아남을 것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 말을 근거로 “우리도 바울을 본받아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살아남읍시다” 라고 선포할 수 없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살아남기로 작정을 한 것이 아니다. 현실을 파악하고 또 현상을 예측해볼 때 사형을 당하지 않고 살아남게 될 것같다는 확신을 갖게 된 것이다. 그를 살아남게 하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가 죽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살고 죽는 것은 사도 바울의 선택사항이 아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의 태도는 무엇인가? 사도는 자기에게 닥칠 현실을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해석을 하고 그것을 자기가 가야할 길 혹은 자기의 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갖는 것이다. 사형을 당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판단이 서자, 그렇다면 자신이 사형을 당하지 않고 살아남는 것이 주님의 입장에서 볼 때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만약 사형을 당하지 않고 살아남는다면 그것은 빌립보교인들의 믿음과 신앙을 더 부추겨서 저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자랑이 풍성하게 할 기회이겠다는 판단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는 그런 방식으로 빌립보교인들의 삶에 그리스도의 자랑이 풍성하게 하는 사역을 해야겠다고 작정을 하는 것이다. 디모데후서 4:6-8에서는 사도는 자기가 곧 죽을 것임을 예감하고 있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딤후4:6). 그리고는 이어서 말한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7-8절). 여기서도 역시 자기에게 주어진 현실 상황은 하나님께서 펼쳐주신 것이라고 믿고 그것을 주님과의 관련성 아래서 이해하고 있다. 살아남게 되든지 혹은 죽게 되든지 자기에게 주어지는 현실을 주님과의 관련성 아래서 그 의미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의도가 무엇인가 라는 관점에서 해석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태도인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바로 이것이다.

* 스스로 하는 본문탐구와 묵상

딜레마 두 욕망 사이에서(22-26)

1) 22(21)- 26절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의 진로 혹은 장래에 대한 문제를 놓고 두 “욕망” 사이에서 심한 딜레마에 빠져있음을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23절).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23절)

2) 그를 딜레마에 빠지게 하고 있는 두 욕망은 각각 무엇입니까?

–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고 싶은 욕망 vs 계속 살아남아서 빌립보의 신자들과 함께 있고 싶은 욕망

3) 그 두 욕망을 놓고 번민하며 무엇을 선택할지 고민하게 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이 두 욕망이 바울로 하여금 어느 것도 포기하거나 소홀히 여길 수 없게 하는 매력을 바울은 각각 어떻게 표현하고 있습니까?

(1)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 – 내게 “더욱 좋은 것”(23절),

(2) 살아서 빌립보의 신자들과 함께 있는 것 – 그들에게 “더욱 유익한 것”(24절)

4) “떠난다”는 말로 비유적으로 표현된(23절) 그것이 실제로 의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 죽는 것(21절)

5) 떠나는 것 곧 죽는 것이 왜 사도의 바라는 바요, 개인적으로는 사도에게 “더 좋은” 것이 됩니까?(23절)

–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됨으로

6) 그것이 이 세상을 떠나는 죽음이라고 할지라도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되는 것이라면 그것이 나에게 더 좋은 것이고,

나는 그것을 바란다고 말하는 바울에게서 우리가 확인하는 그의 가치관은 무엇입니까?

– 얼마나 철저하게 그리스도 중심으로 사는 사람인가!

7) 그가 죽음을 “떠난다”는 이미지로 바꾸어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 다시 그것을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과 동일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확인하는

죽음에 대한 사도의 이해 혹은 태도는 무엇입니까? 이것을 우리 신자들의 죽음에 대한 이해에 어떻게 적용하여 제시할 수 있습니까?

– cf. WBC

8) 사도가 더 살아남아서 빌립보의 신자들과 함께 있는 것이 뿌리칠 수 없는 또 한편의 욕망이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도로 하여금 자기에게 “더 좋은” 그것, 곧 “떠남”을 선택하지 못하고 고민하게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 그것(더 살아남는 것)이 빌립보의 교인들에게 “더 유익”하기 때문

9) 사도가 더 살아남아서 빌립보의 신자들과 함께 있는 것이 그들에게 “더 유익”이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25절, 26절)

바울이 살아남아 그들과 함께 더 사는 것이 그들에게 주는 더 큰 유익이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25절과 26절의 의미가 무엇인지 밝혀보십시오.

(1) 그들의 믿음의 진보와 기쁨에 유익(25절)

(2) 그들의 (그리스도) 자랑이 넘치게 됨(26절)

10)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 교인들의 자랑이 풍성하게 된다”는 의미는 무엇이며,

그것이 사도 바울이 그들과 함께함으로써 가능하게 된다는 말이 구체적으로 의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26절)

11) 그렇게 놓고 보면, 사도가 나에게 더 좋은 것이라고 판단하는 기준이나, 저들에게 더 유익되는 것이라고 판단하는 기준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 내가 죽는 것이 나에게는 더 좋다고 판단하는가, 왜 더 살아남는 것이 저들에게 더 유익이라고 판단하는가를 자세히 살펴보면

양자에게 적용된 기준의 본질은 동일하게 무엇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까?(그리스도) 이것으로 우리가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사도바울의 인생철학,

삶의 원리는 무엇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는 무엇을 기준으로 좋은 것이 무엇이고,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를 판단하며 사는 사람입니까?(그리스도와의 관련성-그리스도 예수의 최우선성!)

12) 나에게 더 좋은 길을 가는 것과 그들에게 더 유익이 되는 길을 가는 것 사이에서 사도가 결국 결론을 내리는 것은 무엇입니까?

두 사이에서 무엇을 가릴는지(22절,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알 수 없는 딜레마에 빠졌던 사도가 결국 내리는 결론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렇게 결론을 내리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그는 무엇을 더 중요한 것으로, 또 가치있는 것으로 선택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입니까?(24-26절)

바울의 이러한 모습이 목회자인 우리에게 주는 도전은 무엇입니까?

13)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께로 가는 것보다 살아남아서 빌립보교인들을 더 유익하게 하리라는 것은 어떻게 해서 된 것입니까?

사도 바울의 자기희생의 결단 혹은 선택으로 된 것입니까? 사도가 죽거나 아니면 살아남는 것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습니까?

14) 그렇기 때문에 이제 사도에게 앞에 있는 재판의 결과를 포함한 자신의 앞 일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에 대하여 갖게 되는 확신이 무엇입니까?(25절)

그 확신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단순한 예측입니까? 신앙적인 논리에 근거한 확신입니까?

그렇게 예측(사형을 당하지 않고 더 살아남게 될 것 같다는 확신)하면서 사도 바울이 취하는 태도가 무엇입니까?

(그렇게 살아남는 것이 빌립보교ㅎ인들에게 스리스도의 자랑이 풍성하게 하는 기회가 되어 그들에게는 더 유익이 되겠다는 현실해석!)

15) 설교를 위한 제안:

(1) 본문에 대한 위와 같은 이해를 근거로 사도 바울의 최우선의 판단의 기준이 오로지 그리스도와의 관계, 그리스도의 복음이 어떻게 되는가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우리의 생활철학, 인생철학도 그리할 것을 촉구하고, 그것이 우리 신자의 행복이고 유익이고 능력이며 그것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삶의 현장에서의 능력임을 강조하는 내용의

설교를 구성해보십시오.

(2) 사도의 현실 인식이 내게 더 좋은 것과 그들(교회)에게 더 유익한 것 사이에서 일어나는 번민에서 결국 복음(그리스도)의 전파를 위하여더 중요한 것을 판단과

처신의 근거로 삼는 데로 나아가는 모습을 부각시키며 성도들을 도전하고 격려하는 한편의 설교를 구성해 보십시오.

단락요약: 22-26절의 단락을 지금까지 파악한 본문 이해를 근거로 하여 흐름이 있는 하나의 단락으로 일목요연하게 요약하여 제시해보십시오.

정창균

정창균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 / 설교자하우스 대표
정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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