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칼럼

목사는 공공의 적인가?

어디 가서 교회목사라고 말하면 불신자들도 예를 갖추어 대하는 때가 한 때 있었습니다. 한국교회 초창기에는 어디 가서 신자라고만 해도 그를 일단은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인정해주는 것이 사회의 보편적인 현상이었습니다.

두려워 할 것과 말아야 할 것

본문으로 인도하는 묵상칼럼(105) 마가복음 8:38   한국교회 지도자들과 생각 있는 교인들은 심한 불안과 두려움에 싸여있습니다. 한국교회는 이제 끝나는 것인가? 교회는 이렇게 몰락하고 마는 것인가 하는 두려움입니다. 이러한 불안과 두려움을 갖게 된 것은 근래에 한국교회가 처한 상황 때문입니다.

고통의 때

이 시대의 사람들을 무엇으로 비유해서 말 할 수 있을까요? 이 시대의 사람들을 무엇과 같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장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비유로 들어 답을 하셨습니다.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꼭 이 아이들 같다는 것입니다.

요즘 생각

살기가 많이 어려워진 게 분명합니다. 이 사람의 어려운 살아가기가 저 사람의 살기를 어렵게 만들고, 그 사람의 살기 어려운 것이 또 다른 사람의 살기를 어렵게 합니다. 그렇게 어려운 살아가기는 돌고 돕니다. 우리의 살아가기는 모두가 이렇게 얽혀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린 그걸 모르고, 저 사람을 궁지에 넣어야 내 살기가 편해진다고 믿고 그 헛되고 부질없는 제 욕심 챙기기에만 진력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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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에 서는 신앙

애굽을 벗어난 백성들이 홍해를 담대하게 건넌 것은 하나님을 믿어서가 아니었습니다. 홍해 가운데로 나 있는 길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홍해에서는 현실적으로 안전이 보장되어 있었습니 다. 눈앞에서 바다가 갈라지고 그 바다 한복판에 길이 이미 나 있었습니다. 이 상황에서는 아무리 바다로 달려 들어가도 거기 빠져죽을 일이 절대로 없다는 것은 굳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발동하지 않아도 사람이면 누구나 확실히 아는 사실입니다.

정직

제가 지금 보다 훨씬 젊었던 시절에는 정부의 높은 사람이 TV 뉴스 등에 나와서 하는 판에 박힌 말을 자주 듣곤 하였습니다.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는 말입니다.

절대소망의 기회

교회의 부흥기에는 무엇을 하여도 교인들이 모여듭니다. 그래서 다양한 프로그램과 행사들에 힘을 기울이게 됩니다. 그 프로그램과 그 행사들이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고 속기 때문입니다.

축복하는 자와 저주하는 자

모세는 말년 40년을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광야에서 보냈습니다. 그가 광야 40년 세월을 함께 살았던 그 백성들은 모세에게 언제나 친근하고, 대견스럽고, 고마운 사람들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목사는 공공의 적인가?

어디 가서 교회목사라고 말하면 불신자들도 예를 갖추어 대하는 때가 한 때 있었습니다. 한국교회 초창기에는 어디 가서 신자라고만 해도 그를 일단은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인정해주는 것이 사회의 보편적인 현상이었습니다.

두려워 할 것과 말아야 할 것

본문으로 인도하는 묵상칼럼(105) 마가복음 8:38   한국교회 지도자들과 생각 있는 교인들은 심한 불안과 두려움에 싸여있습니다. 한국교회는 이제 끝나는 것인가? 교회는 이렇게 몰락하고 마는 것인가 하는 두려움입니다. 이러한 불안과 두려움을 갖게 된 것은 근래에 한국교회가 처한 상황 때문입니다.

고통의 때

이 시대의 사람들을 무엇으로 비유해서 말 할 수 있을까요? 이 시대의 사람들을 무엇과 같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장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비유로 들어 답을 하셨습니다.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꼭 이 아이들 같다는 것입니다.

요즘 생각

살기가 많이 어려워진 게 분명합니다. 이 사람의 어려운 살아가기가 저 사람의 살기를 어렵게 만들고, 그 사람의 살기 어려운 것이 또 다른 사람의 살기를 어렵게 합니다. 그렇게 어려운 살아가기는 돌고 돕니다. 우리의 살아가기는 모두가 이렇게 얽혀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린 그걸 모르고, 저 사람을 궁지에 넣어야 내 살기가 편해진다고 믿고 그 헛되고 부질없는 제 욕심 챙기기에만 진력하는 걸까요?

내 아버지의 기도

제 아버지는 왜정 때 17살에 김용안 목사님에게 전도를 받고 예수를 믿었습니다. 신실한 장로로 교회를 섬기다가 79세 되던 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목사의 딸과 아버지의 딸

“목사의 딸”이란 책을 읽었습니다. 돌아가신 박윤선 목사님의 딸이 아버지 박윤선 목사님과 얽힌 가정사와 목사 박윤선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서술한 수기형식의 책이었습니다. 가족들이 겪은 고생과 아픔에 대한 연민과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벼랑 끝에 서는 신앙

애굽을 벗어난 백성들이 홍해를 담대하게 건넌 것은 하나님을 신뢰해서가 아니라, 홍해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홍해 가에서는 현실적으로 안전이 보장되어 있었습니다. 눈앞에서 바다가 갈라지고 그 바다 한복판에 길이 이미 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말씀 없이도 잘만 살아온 재앙

한국교회는 지난 수십 년 긴 세월동안 말씀 없이도 교회는 부흥만 잘되고, 말씀 없이도 신자는 잘만 살아지는 세상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면서 그렇게 잘되는 복 받은 한국교회를 세계에 자랑하였습니다. 그러나 지내놓고 보니 그것은 복이 아니라, 재앙이었습니다.

설교가 쓸모없는 시대

설교할 기회가 자꾸 없어져 갑니다. 주일 밤 예배를 없애는 교회가 늘어가고, 수요 예배도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교회가 늘어갑니다. 예배가 자꾸 없어지니 당연히 설교가 없어져갑니다. 그런가하면 교회가 자꾸 없어지는 바람에 설교할 곳이 자꾸 없어져 갑니다.

명 의

마치 교회를 비난하는 일에 경쟁이라도 붙은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합니다. 한국교회를 말하는 사람이면 거의 모두가 조롱에 찬 비아냥과 분노에 찬 비난으로 열을 올리기 때문입니다.

빈 무덤에서 갈릴리로

해마다 부활절이 되면 많은 이들이 갖게 되는 고민이 있습니다. 최소한 오늘 같은 부활주일 아침만이라도 감격스러워지고 흥분이 되고 가슴이 뜨거워지고 해야 될 것 같은데, 사실은 아무런 특별한 느낌도 없고, 저절로 우러나오는 아무런 증상도 없다는 것입니다.

교리를 설교하지 않은 대가

한국교회는 위기상황에 처하여 있다는 것은 이제는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 현실입니다. 위기적 상황의 양상도 다양합니다. 그러나 그 양상이 무엇이든지 이 모든 위기적 상황의 공통된 본질은 바로 교회 혹은 기독교 신자의 정체성의 문제로 집약됩니다. 정체성이란 신자의 신자다움과 교회의 교회다움을 말하는 것입니다

영문 밖의 교회

교회는 세속적인 정치권력과의 연대를 통해서는 결코 세상 속에서 수행해야 할 교회의 본래 사명을 완수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복음의 위력과 영향력을 갉아먹을 뿐입니다.

시대의 징조

예수님은 이 시대의 징조를 알아차리고, 그 징조에 부합하는 처신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도 시급한 일인가를 매우 단호하고 긴급한 어조로 말씀 하셨습니다(눅12:54-59). 예수님은 시대의 징조를 무슨 신비한 경험이나 초자연적인 현상을 두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국교회, 절망과 소망의 두 얼굴

작금의 한국교회가 처하여 있는 현실은 “비난 받는 한국교회”라는 한 마디로 요약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사회도, 여론도, 각종의 반기독교 단체들도 교회에 대하여는 욕설 섞인 막말 비난을 쏟아내기를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부교역자 제자들에게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 신나는 가장 큰 이유는 신학생 한 사람이 단순히 사람 하나가 아니라, 교회 하나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신학생 열 명을 제대로 가르쳐내면, 제대로 된 열 교회가 서는 것입니다.

담임 목회자들께 드리는 부탁

나는 감사하게도 설교를 많이 할 수 있는 교회에서 부교역자 사역을 하였습니다. 전임 전도사 때부터 주일 저녁예배와 수요예배 설교는 물론 심지어 주일 오전 설교를 거의 정기적으로 하다시피 하였습니다.

선지자의 미친 행동

신앙공동체인 교회는 성경에서나 역사에서나 언제나 두 종류의 도전에 직면하며 나아갑니다. 교회 밖으로부터 오는 도전과 교회 안으로부터 오는 도전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교회로 존재하는데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대부분 교회 밖으로부터 오는 도전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를 팔아먹을 사람

해마다 이때쯤이 되면 6월 말에 돌아가신 선생님 생각이 납니다. 박윤선 목사님입니다. 물론 그 어른은 오랜 세월 동안 교파를 초월하여 이 땅의 수많은 목회자들의 잊을 수 없는 선생님입니다. 저는 합신 졸업을 앞두고 불광동 수양관에서 모인 사은회 전날 밤에 하신 그 어른의 설교를 평생 잊을 수 없습니다.

설교자의 책임

하나님의 말씀이 강단에서 힘 있게 선포되면 교회는 흥했고, 그렇지 않을 때는 교회가 병들었으며, 병든 교회는 그 사회가 암흑의 시대로 접어드는 요인이 되었다는 것은 지난 이천 년 동안의 교회 역사를 살펴보면서 우리가 얻는 중요한 통찰입니다.

신앙고백

우리가 신앙을 고백하는 것은 단순히 어떤 말을 진술하는 것과는 다른 일입니다. 진정한 신앙고백에는 세 가지의 조건이 갖추어져 있어야 합니다. 첫째, 사실에 대한 내용과 그 내용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롯은 자폐증 환자인가?

심리학은 우리가 성경을 해석하여 설교를 하고, 교인들을 이해하여 효과 있게 다가가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경 본문에 대하여 과도한 심리적 해석을 행하는 것은 매우 치명적인 잘못입니다. 본문의 의미나 의도와 상관없이 해석자가 자의로 성경 말씀에 의미를 주입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찌르는 사람과 함께 있어주는 사람

돌아가신 제 아버지께서 어릴 때부터 우리 8남매에게 자주 하신 말씀은 이것이었습니다. “너희들은 목회에 거침이 되지 말아라. 목회에 거침이 되는 일에 가담하지를 말아라.” 이 말씀은 우리가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그것도 자주 들어야 했던 말씀이었습니다.

도덕성 회복인가, 신앙 회복인가

한국사회 안에는 이미 반기독교운동을 조직적으로 강력하게 펼치는 그룹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교회 밖의 시민단체들이 교회를 개혁하겠다고 소리를 높이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기도 합니다.

힘들고 지친 이 땅의 목회자들에게

담임목사라 불리며 목회현장에서 상당한 세월을 보내고, 지금은 목회자를 양성하는 신학교에서 십 수년째 소위 선생으로 살다보니 험악한 사역현장에서 안간힘을 쓰느라 힘들고 지친 이 땅의 목회자들이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으로 떠오르곤 합니다.

떠올리기만 해도 가르침이 되는 선생님

곁에 손잡고 함께 있지 않아도, 눈앞에 얼굴 마주 보고 있지 않아도, 그 어른을 떠올리기만 해도 가르침이 되는 선생님을 가슴에 품고 산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복입니다.

아직도 남겨 놓으신 기회

구약의 요나서를 대하면 첫 장면부터 매우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요나에게 임하였습니다. 죄악의 도시 니느웨 성으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라는 것이었습니다.

“네 아비에게 물으라!”

초기 한국기독교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 가운데 하나는 외국 선교사가 입국하기 전에 이미 성경이 먼저 번역되고 보급되었다는 점입니다.

죽을 운명에서도 살아남는 자와 살아남을 기회에서도 죽음의 길을 가는 자

아하시야는 아합 왕의 아들입니다. 그는 2년 밖에 왕 위에 있지 않았지만,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악했던 아버지 아합 만큼 악하다는 단정을 받을 정도로 악한 왕이었습니다.

건달이 되지 말고, 목회자가 되십시요!

황우석 박사는 한때 온 국민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영웅 과학자였습니다. 그러나 6-7년 전, 황우석 박사가 어떻게 온 나라를 요동치게 만들고 참으로 비참한 모습으로 몰락을 했었는지는 이 나라 국민 모두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성경 문맹의 시대

역사적으로 성도들의 성경 문맹 현상이 가장 극심했던 때는 중세시대입니다. 중세시대에는 사제들만 성경을 소유할 수 있고, 성경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평신도가 성경을 소유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불법이기도 하였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권하는 말

주일 저녁예배를 없애는 교회가 늘어가고 있습니다. 예배가 자꾸 없어지니 당연히 설교할 기회가 없어져갑니다. 수요 예배를 다른 목회프로그램으로 대체하는 교회도 늘어갑니다. 그래서 설교할 기회가 자꾸 없어져 갑니다.

입을 다물고 눈과 귀를 열어야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역사를 다스리신다는 것을 의심 없이 믿고 있는데, 정작 삶의 현장에서는 하나님이 이 역사를 다스리고 계신다는 증거를 아무 곳에서도 찾을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회개할 기회를 박탈당하는 심판

하나님이 행하시는 가장 무서운 심판은 회개할 기회를 박탈해 버리는 심판입니다. 하나님을 떠나버린 이스라엘에게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하시는 말씀은 바로 그 심판 선언에 다름이 아니었습니다.

선언적 개혁주의자와 실천적 개혁주의자

제가 유학중일 때 아버지와 같은 저의 지도 교수님께서 저를 앉혀놓고 수시로 하셨던 말씀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개혁주의자라는 것은 반드시 두 가지 방면으로 입증되어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

현대 기독교인들이 잃어버리고 있는 가장 중요한 것 하나를 든다면 그것은 신앙고백 일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을 고백하는 것은 단순히 어떤 말을 진술하는 것과는 다른 일입니다.

구원 받은 사람의 아우성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사람이라는 것은 사실 엄청난 사건이기도 합니다. 그 자체가 가장 큰 기쁨이기도 하고, 세상을 담대하게 살아갈 가장 확실한 근거이기도 합니다.

복고 열풍

요즈음 가요계에는 7080 가요에 대한 복고열풍이 불고 있다 합니다. 7-80년대에 유행했던 노래들을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흐름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

나는 졸업한 제자들에게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선생의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말이 더 정겹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전수가 단절된 시대

3년쯤 전이었습니다. 평소에 존경하며 따르는 선배 목사님께서 혼자말로 중얼거리듯이 제게 말씀 하셨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앙을 주제로 다음 세대와 대화가 될 수 있을지 걱정이예요.”

고독한 몰입

근래에 이런 저런 사고를 치며 교회 안팎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한국의 대형교회들을 두고 비판과 조롱의 말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자식을 제대로 키우고 싶은 부모들에게

제가 목회할 때 알고 지내던 의사 한 분이 있었습니다. 목이 자주 아프다보니 그 병원에 가끔 가곤 하였는데, 알고보니 그 원장 선생님은 장로님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원장님은 자신은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는 말을 당당하게 하였습니다.

나그네 자존심

50대 이상 된 사람이면 한번쯤 들어보거나 혹은 불러보았을 한 때 유명했던 흘러간 노래 가운데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 길. 지나온 자국마다 눈물 고였다." 그 노래는 이렇게 끝이 납니다. "나그네 흐를 길은 한이 없어라." 인생은 나그네라고 말하는 노래입니다.

이율배반

사도 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첫 전도여행을 떠나 루스드라에 머물고 있을 때였습니다. 하루는 말씀을 전하다가 귀를 기울여 듣고 있는 지체장애인 한 사람을 기적을 행하여 고쳐주었습니다.

여전히 소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

때로는 우리의 목회가 끝도 없는 긴 터널같이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어떤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진심으로 원하는 것도 아니면서, 때로는 이쯤에서 이제 목회를 내려놓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한 가지 제안

설교는 무엇보다도 본문말씀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설교의 본질에 입각하여 한국교회 설교 현실을 살펴볼 때, 근래의 한국교회 설교가 보여주고 있는 압도적인 현상은 설교의 말씀(본문) 이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짓말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야 된다는 것은 인간사회의 보편적인 도덕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인 신자들이 거짓말을 하지 않아야 된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계명 가운데 하나입니다.

성공한 자들을 향한 경고

하나님께서 절대로 용납하실 수 없는 것 두 가지가 있습니다. 우상숭배와 교만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것을 하나님의 자리에 놓는 것이 우상숭배이고,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로 올라가는 것이 교만입니다.

혼자 남겨져도 혼자가 아닌 사람

문득, "나도 사람을 가르쳤다면 제법 가르쳤습니다."하고 말씀하시던 박윤선 목사님이 생각났습니다. 30년 가까이 전 남의 교회 교육관 지하 예배실에서 신학을 배울 때였습니다. 여든을 내다보시는 선생님이 강의 도중에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서 제자다운 제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배교정치의 후유증

솔로몬이 죽자 아들 르호보암이 왕위를 이어받았습니다. 새 왕이 세워지자 백성들은 새로운 정치에 대한 큰 기대를 갖고 왕을 찾아와 자신들의 어려운 사정을 풀어주도록 요청하였습니다. 솔로몬 왕의 통치 아래서 주어졌던 버거운 부담과 고역과 무거운 멍에를 이제 가볍게 해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확인하고 싶으신 것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우리가 하나님을 어느 정도나 신뢰하고 있는지 우리의 행동을 통하여 확인하고 싶어 하십니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자랄수록 하나님은 그 믿음이 거창한 구호나 비장한 각오를 외침으로가 아니라, 눈에 보이는 행동으로 확인되기를 원하십니다.

삶으로 드리는 예배

성경은 예배를 단순히 하나의 신앙공동체가 정한 시간에 정한 장소에 모여서 함께 드리는 의식으로 이해하는 데서 그치고 있지 않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성경은 신앙 공동체가 흩어져서 살아가는 현장에서의 삶 자체를 가리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예배 갱신과 예배 변질

예배는 지난 20여 년 동안 목회현장에서 “예배갱신”이라는 명분 아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아온 대표적인 이슈 가운데 하나입니다. 예배갱신 주장자들은 1) 예배의 문화적응의 필연성과 2) 예배의 선교적 기능, 3) 예배의 치유적 기능 등을 예배갱신의 당위성과 필연성의 근거로 내세우면서 다양한 방식의 예배를 시도해왔습니다.

하나님이 되고 싶은 사람들

사탄교에서 활동하다 이탈하여 교회로 돌아와서 이제는 기타 하나들고 복음송을 부르고 간증을 하면서 돌아다니는 젊은 백인 아가씨를 제가 유학중이던 90년대 중반에 만나 장시간 대화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사람 사는 맛

"얼매나 좋은디를 갔는가, 꿈에 한번 보여주지도 않아!" 결혼하여 51년을 살고 지난 봄에 세상을 떠난 남편을 두고 80을 내다보는 할머니가 제게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화합이라는 이름의 혼합

근래 한국교회는 다양한 국면에서 도전과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심각한 위기는 이 사회와 다른 종교로부터 받는 압력입니다.

기회를 다스리는 지혜

기회는 머리만 있고 꼬리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기회는 일단 지나가버리면 다시 붙잡을 수 없으니 눈앞에 다가왔을 때 반드시 붙잡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말일 것입니다.

평생의 기도

 10년쯤 전 부터 제가 품고 있는 소원이 있습니다. 처음 1-2년 동안은 거의 매일 새벽마다 그 소원을 품고 기도하였습니다. 지금도 종종 그 소원을 품으며 기도하곤 합니다.

폭군정치의 후유증

솔로몬이 죽자 그의 아들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르호보암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왕이 되자마자 두 그룹의 정치 자문단을 구성하였습니다. 하나는 아버지 때부터 나라를 섬겨왔던

제자와 사단 사이

운전을 하다가도, 멍하니 앉아있다가도 갑자기 떠오르곤 하는 성경의 한 장면이 있습니다. 어느 길바닥 위에서 가던 길을 멈추고 예수님과 베드로 사이에서 일어났던 사건입니다. 이 일은 모든 제자들이 다 보는 앞에서 일어났습니다.

한국교회는 핍박 받고 있는가?

한국 교회는 숫자적 성장이 멈추고 침체상태에 들어갔으며, 대사회적 영향력도 급격히 하락하는 위기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은 교회 안팎의 상식 있는 모든 사람들이 드러내놓고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듣고 싶은 말과 해야 되는 말

커뮤니케이션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사람들은 선별적으로 듣는다고 합니다. 즉 자기가 줄곧 생각해왔던 것을 인정해주는 말을 듣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그러한 경향이 더욱 강합니다.

불순종의 시대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순종을 통하여 언약에 근거한 인격적인 관계를 확인하시며, 그들의 순종을 통하여 당신의 역사를 진행해 나가신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사람을 책임지는 일

목회는 사람을 책임지는 일입니다. 장소가 어디이든지, 규모가 얼마이든지 하나님이 맡겨주시는 사람을 책임지는 일이 목회인 것입니다. 그리고 목회자가 된다는 것은 사람을 책임지는 일에 인생을

역사에서 배우지 않는 사람

모든 피조물 가운데 인간만이 다른 사람이 당하는 상황을 마치 내가 당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고, 다른 사람의 경험을 내가 한 경험과 똑같이 공유할 수 있습니다. 아픔으로 고통 당하며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영광은 목적인가 수단인가?

미국에서 여론 조사를 해보니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서 국민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은 링컨 대통령이고, 최악의 대통령은 아들 부시 대통령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의 같은 점은

설교의 시대는 지났는가?

한 시대가 암흑기에 접어들었을 때 거기에는 반드시 잠든 교회가 있고, 잠든 교회가 있는 곳에는 잠든 교인들이 있고, 잠든 교인들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잠든 강단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헛 살아버린 인생

인생을 헛살아 버린 한 사람의 슬픈 이야기입니다. 한 부자 농부가 있었습니다. 많은 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 해는 그 사람이 사는 지역에 큰 풍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큰 수확을 거두었습니다.

광풍 속에서 만난 주님

우리가 예수님을 모시고 있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우리가 그렇게 말할 때 우리는 내심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집안에 에어콘이

혼돈의 시대

법이 이불 속까지 들어와서 간섭을 해서는 안된다며 현직판사가 간통죄를 놓고 헌법소원을 냈단 말을 얼마 전에 들었습니다. 간통을 죄라고 한 현행법은 헌법위배라는 것이 그 사람의 주장이었습니다.

엄중한 명령과 간곡한 부탁

오늘 날 교인들이 교회에 와서 들어야 하는 메시지는 사랑과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이며, 그러므로 그들을 더 피곤하게 하거나 그들에게 부담을 주는 설교를 해서는 안된다는 이론이 팽배합니다. 그리하여 죄를

혼자 살 수 없는 세상

환갑을 오래 전에 넘기고 60대 후반을 향하여 가고 있는 분을 잠시 알고 지낸 적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오신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하여 회한도 없고, 지금 살고 있는

제 잘난 맛으로 살다 망한 왕

히스기야 왕은 지도력으로나, 신앙으로나 매우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는” 사람이요,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는 자”요, “그의 전후 어떤 왕도 히스기야처럼 하나님을

따뜻한 마음

“목사는 돌을 집어 먹어도 소화를 시킬 수 있는 사람이 해야 된다!" 목사가 되겠다고 하니 어머니가 그 길을 말리며 하신 말씀이라며 어느 목사님이 들려주신 이야기였습니다. 그 어머니는 아주 오래 전에 강원도에서 전심을 쏟아 목회하다가 어느 날 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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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결단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믿지 않는 것은 아닌데, 하나님이 여전히 역사하신다는 것을 의심하는 것도 아닌데, 내가 처한 현실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고, 하나님이 일하고 계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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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보다 더 중요한 것

똑 같은 사건을, 같은 장소에서, 같이 보았음에도 그것을 보고 내리는 결론이나, 그것을 보고 취하는 반응들은 판이하게 달라지는 경우를 자주 경험합니다. 1분 동안의 강한 지진으로 만여 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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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사랑스러운 자녀로 키우기 위한 대가

얼마 전까지 가까이서 알고 지냈던 의사 한 분이 있었습니다. 환자들이 끊임없이 찾아와서 기다리는 소문난 서울대 출신 의사 선생님 이었습니다. 제가 목사인 것을 안 이후부터 그분은 저를 깍듯이 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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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와 헌신

투자와 헌신은 무엇인가를 위하여, 혹은 누군가를 위하여 나를 희생한다는 점에서 외형은 동일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투자와 헌신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반대급부를 전제로 한 희생을 투자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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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경 백번 읽고 아비 뺨 치기

중국 속담에 “효경 백번 읽고 아비 뺨친다”는 말이 있다 합니다. 효에 대한 지식은 넘쳐나는데, 실제 생활은 그와 반대로 사는 사람을 비웃고 책망하는 말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듣는 순간 왠지 효경 백번 읽고 효경의 가르침과는 반대로 행동하는 중국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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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사는 지혜

인생은, 부산행 고속버스에 올라타서 한숨 푹 자고 일어났더니 저절로 부산에 도착해 있는 것과 같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인생을 산다는 것은 순간순간 크고 작은 결정들을 내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원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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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물로 지운 찬송가

저에게는 종이가 거의 황토색처럼 바래고, 앞뒤 여러 페이지가 찢겨져나간 오래된 찬송가 한권이 있습니다. 저희 부모님께서 왜정 때 사용하시던 찬송가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저의 어머니께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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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가운데서 부르는 노래

오래 전에 받았던 한 제자 목사님의 글이 생각납니다. 배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아내를 데리고 응급실로 달려 갔더니 출혈인 것 같다하여 급히 수술을 했다 하였습니다. 3000cc나 되는 물이 배속에 차 있었고, 장기와 나팔관 주위 여러 곳에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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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한 일과 중요한 일

제가 아직 유학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큰 아이가 열 두세 살 때이니까,우리 아이들 셋 모두 아직 어린아이 티를 벗지 못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세 아이가 평소에 다투거나 싸우는 일 없이 워낙 사이좋게 잘 지내주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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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정

여리고 외곽 길가에서 평생 구걸을 하며 연명하는 소경 거지가 있었습니다. 오고가는 사람들에게 나사렛 예수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뜻을 정하였습니다. “나사렛 예수라면 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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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는 것과 다른 길을 찾는 것

처칠이 언젠가 자신의 모교에 초청을 받아가서 했다는 유명한 연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포기하지 마십시오(Don't give up)!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Never give up)! 절대로 포기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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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아웃(Time Out)

아주 오래 전 이었습니다. 한 젊은 부인이 제 정신을 잃고 발악을 하듯 방바닥을 치며 통곡을 하였습니다. “오늘 아침에 그렇게 보내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원통하지는 않을 것을! 너무나 원통해! 너무나 원통해!” 그 여인이 그렇게 통곡하는 데는 사연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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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증거

교인들이 두패로 갈라져 싸우는 바람에 교회가 엉망이 되어버렸다는 어느 교회 소식을 들으며 성경을 읽어본 적이 없는 불신자들도 다 아는 이야기 하나가 생각났습니다. 솔로몬의 재판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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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룩 잡자고 집에 불지르는 죄

“내가 전 재산을 날리고 망할지라도 반드시 너를 망하게 하고 말겠다!”라며 분노에 가득차서 소리를 지르는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말에는 “너 죽고 나 죽자!”는 무서운 말도 있습니다. 받은 상처나 쌓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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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설교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설교는 삶의 매 순간을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신자들을 그 대상으로 합니다. 우리의 설교를 듣는 교인들은 세상을 등지고 어느 산속이나 외딴 섬에 끼리끼리 모여 별천지를 이루고 사는 사람들이 아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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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 없는 설움

흔한 일이 아니기는 하지만, 요즘에도 싸우는 교회들이 종종 있습니다. 정치판에 흔해빠진 표현대로,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지만 교회 안에서도 드러내 놓고 편을 가르고, 맞붙어서 충돌을 하는 그런 “쌈박질”이 가끔씩 일어나고 있습니다.

기도 명령

막동이 녀석을 낳고 돌이 가까워 올 때였습니다. 저는 목수안수 일 년 차의 부목사로 그리 크지 않은 한 교회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꼭 새벽기도 갈 시간이면 일어나서 울어제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내는 새벽기도를 갈 수가 없었습니다.

목자가 되고 아비가 되어

“나로 하여금 우리 교인들에게 목자가 되고 아비가 되게 하소서. 목자의 마음을 주시고, 아비의 마음을 주소서. ” 담임목사로 목회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한 동안 새벽마다, 그리고 틈만 나면 처절한 마음으로 주님께 애원한 저의 기도였습니다.

우리들의 모순

수년 전, 신도시 아파트 단지에서 방문 전도를 하면서 큰 충격과 상처를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충격은 교회 때문에 교회에 나가지 않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 때문이었고, 상처는 그런 비난과 아픈 호소에 대하여 아무런 대답할 말이 없을 만큼 우리 교회들이 세상

깨어진 관계의 회복

해마다 어버이날 즈음이 되면, “나무는 가만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가만히 있지를 않고, 자식은 부모를 잘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가 기다려주지를 않는다(樹慾靜而 風不持 子慾養而 親不待)”는 옛 사람의 이 싯귀 한 구절이 마치 깊은 신음 소리처럼 떠오르곤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

사람은 무서운 비판과 날카롭고 예리한 지적을 받을 때보다, 따뜻한 보살핌과 격려를 받을 때 깊은 감동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감동 받을 때 사람은 의욕이 생기고, 용기도 생기고, 힘도 생기게 됩니다. 감정이 메마르고 만사가 오로지 자기중심적이어서,

울어야 할 진짜 이유

아주 오래 전, 부교역자로 사역할 때였습니다. 한 번은 설교하는데 나이 많이 드신 할머니 한 분이 설교 중에 계속 눈물을 흘리면서 우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 노인께서 내 설교에 은혜를 받으시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러자 힘이 났습니다. 용기와 자신감이 생겨서

포기하지 않으시는 주의 은혜

우리의 믿음이 자랄수록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집니다. 사실 우리의 믿음이 자란다는 말은,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깊어진다는 말의 다른 표현에 불과한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하나님은 누구이시고, 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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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않는다는 확신, 죽어도 좋다는 각오

30년 가까이 전, 제가 부목사로 섬기고 있던 교회에 김 집사님이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믿지 않는 남편을 전도하기 위하여 여러 해 동안 무진 애를 쓰시던 분이었습니다. 그의 남편은, 분명히 집에 계시는 것을 확인하고 앞문으로 들어가면 어느 새 뒷문으로

경영학의 원리에서 교회의 원리로

저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였습니다. 배우는 과목 중에 경제수학을 제외하고는 모든 과목이 제법 흥미도 있고 관심도 있어서 나름대로는 열심히 공부를 하였습니다. 특히 경영조직론, 노사관계론 등 조직을 경영하고 사람을 다루는 일에 대한 공부는

없으면 그립고, 안보이면 보고 싶은 사람

짧은 시간 함께 지냈어도 오랜 세월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있고, 오랜 세월을 함께 했어도 함께 지낸 의미가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생각할수록 애틋한 정과 포근한 추억으로 떠오르는 사람이 있고, 생각할수록 상처와 회한으로 되살아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노년이 아름다운 사람

세월에 대하여도, 그리고 사람에 대하여도, 이제는 뒷모습을 많이 보이며 살아야 할 처지가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가끔씩 하게 됩니다. 다시 더 젊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거나, 옛날이 그리워지는 건 분명 아닌데, 지나 온 세월이 아쉬운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습니다.

열심히 기도하는 이유

기도를 열심히, 그리고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은 신앙인이면 누구나 아는 일입니다. 그리고 누구나 사모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 신앙인들이 기도를 열심히, 그리고 많이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새벽기도 하는 것을 그렇게 힘들어 하는 부교역자들에게

제대로 듣기

교실에 들어오신 선생님이 코를 킁킁 거리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게 무슨 냄새야?” 그러자 앞 자리에 앉아있던 한 학생이 얼른 대답했습니다. “OO가 도시락 까먹었대요!” 그런데 뒤 자리에 앉아있던 한 아이는 급히 일어나더니 창문을 열기 시작하였습니다.

착 각

한 때, 저는 극도의 피로와 탈진으로 참 힘든 나날을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새벽 기도 시간에 자신도 모르게 한 고백이 저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하나님, 사람이 저녁에 잠자리에 들었으니 다음 날 아침에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

원숭이를 산채로 사냥하는 법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가장 IQ가 높다는 영리한 원숭이를 사람들은 어떻게 산채로 잡을 수 있을까? 호기심이 발동하였습니다. 그런데 영리한 원숭이를 생포하는 “원숭이 사냥법”은 의외로 원숭이의 멍청함을 이용한 간단한 방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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